제가 보기에 현재 중학교 교육 시스템과 환경은 사람 잡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교육 시스템은 상위 학교 진학을 위해 서열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육의 최고 가치는 인기 특목고에 얼마나 진학할 것이냐입니다. 그래서 모든 키워드는 '선행'에 수렴합니다.

어떻게 아이들속에서 탁월한 아이들을 발굴해내 이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느냐가 교육의 목표가 아닌 것같습니다.

이런 교육시스템속에서는 순응적이며, 자기 관리를 잘하는 아이들이 인재입니다.

호기심많고, 자기 관리가 잘 안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경쟁대열에서 탈락합니다. 중학교 시절 한 두학기 방황해서 '선행'대열에서 잠시 이탈하거나,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자신의 입지를 회복하기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때 학교와 가정은 이런 아이들에게 '실패자'라는 시선을 주기 시작합니다. 낙인을 찍는 것입니다.

부모의 조바심은 자신들의 아이가 10대 중반에 이미 사회적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데서 비롯됩니다.

인터넷의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지방대학을 비하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다닙니다.

제가 스스로 중학생이라고 생각하니 갑갑하고 미치겠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때 지하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20여일을 버틴 생존자가 겪었을 갑갑함이 느껴집니다.

날더러 어떻하란 말입니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학교, 집, 학원을 돌라고 합니다.

학원에 안가면 친구도 사귈 수 없다고 합니다.

내가 자라면 나는 어떤 인간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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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니 어린 시절 늘 또래들과 어울려 지낸 듯합니다.

아침 밥먹고 학교가고, 학교마치면 운동장에서 축구, 야구, 농구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실컷 놀았습니다.
해가 지면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 번화가 영화관이나 백화점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구경했습니다.

시내에 갈 때마다 꼭 들러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일제 카세트를 전문적으로 파는 오디오 가게였습니다.
'SONY' 'PANASONIC' 'JVC' 국산에 비해 세련된 디자인을 지닌 일제 카세트플레이어를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시험 때면 귀에 라디오 리시버를 꽂고 고교 야구 중계를 들으며 억지로 참고서에 눈을 고정시켰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아마도 생업에 바빠서 우리들에게 시선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살림살이 괜찮은 집 아이들은 과외를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소수였습니다.

대부분은 운동장에서 골목에서, 시립도서관에서,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집에 몰려가서 만화책을 보기도 하고,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멋진 여학생의 자태에 넋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꼭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야구팀을 짜서 야구 시합을 한번 할 수 있으면 행복했습니다. 공짜 영화 구경 비법을 고안해 친구들에게 허풍 떨 때가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자란 세대들이 이제 자신들의 아이에게는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지난 세월속에 아쉬움을 많이 남겨뒀기 때문일까요. 살아보니 역시 무엇이 좋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아이에게 시행착오로 겪을 고통을 덜어주고 싶기때문일까요.

애써 쌓은 부와 명예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본능 때문일까요?




Posted by 펜맨

아이가 중학교 2학년입니다. 중학교에 입학 무렵부터 온 집안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 마음이야 잘 키우고 싶습니다.

똑똑하기를 바랍니다. 한국 기준으로 볼 때 남들이 부러워 하는 학교에 가기를 바랍니다.
번듯하기를 바랍니다. 남의 시선에도 외모가 괜찮아 보이기를 원합니다.
똑 부러지기를 바랍니다. 자기 일 잘 처리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손해 보지않고 사회 관계를 잘 헤쳐 나가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영어를 잘 하기를 바랍니다. 외국을 여행할 때 주눅들지 않고 유창한 발음으로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부모 욕심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이도 힘들다고 합니다.

놀고 싶어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기를 원합니다.
청소년기의 호기심도 모두 충족시키고 싶어합니다. 자기를 좀 내버려 달라고 합니다.

부모의 걱정이 깊어집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안되는데' 조바심을 냅니다.

그럴 수록 부모와 아이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집니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이 땅에서 중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자신들이 겪었던 중학교 시절을 반추해봐도 도저히 이해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에 대한 걱정과 관심에서 벗어나 이 땅의 중학생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노래방에서,번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며 자라고 있나요?

우리 아이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미니홈피에서, 온라인 게임터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나요?

제 스스로 중학생이 한번 되어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저의 어린 시절경험과 현재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중학생이 되면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Posted by 펜맨

오랜만에 가족들과 영화를 관람했다.

'워낭소리'. 경북 봉화의 한 농가를 무대로 40년을 산 소와 그의 주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였다.

영화가 끝난 뒤 아내의 눈시울은 붉어있었다. 따님은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뒷자리를 돌아보니, 눈물을 훔치는 관람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에 혼자서 눈을 감으니, 영화속의 대사가 가슴을 파고 든다.

"아, 아파", "안 팔아", "내 팔자야"

영화속의 늙은 농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논밭을 일구며 살아왔다. 영화속의 소와 인연을 맺고 40여년을 살면서 소에게 의지하고, 또 소를 돌보며 살아왔다.

그는 눈이오나 비가 오나 해뜨기전에 일어나, 새벽 여명을 보며 소를 몰고 들로 나선다. 논밭을 매고 틈나는 대로 소에게 먹일 꼴을 베고, 짚을 썬다.

손가락이 굽고, 발가락의 뼈가 빠질 정도로 80세 가까이 힘든 노동을 견뎌온 분이다.

그 분이 가끔 들이나 방에 누워, '아, 아파"라고 한마디를 내 뱉는다.

이 말이 어찌그리 가슴을 파고 드는지.

늙은 농부는 늙은 소를 먹일 힘이 달리자, 고심끝에 소를 몰고 소시장으로 향한다.

소 중개인들이 소를 헐값에 사려고 하자, 그는 또 외친다. "안 팔아"

이 말도 가슴을 후비고 들어온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딸에게 물었다. "어떤 대사가 가장 많았지?"

"내 팔자야~"

영화속에서 늙은 농부의 아내는 고생하는 남편을 보면서, "아이고 내 팔자야~"라고 수시로 외친다.

안타까움의 표현이리라.

마음이 아프다. 나도 모르게 "아, 아파"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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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선일보 노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3년의 경험과 2009년을 맞이하는 제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인생은 늘 도전하면서 사는 것이 본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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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우병현입니다. 3년만에 광화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역삼동과 가산동 벤처 단지에서 20대 젊은이들과 뒹굴면서 인터넷 벤처 일을 일했습니다.  3년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특히 독자 입장에서 '조선일보'와 '조선닷컴'을 바라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밖에서 보니 역시 조선일보가 최고였습니다. 특히 기업 현장에서 '위클리비즈'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젊은 직원들과 매주 월요일 오전에 위클리비즈를 읽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인터넷과 휴대폰에 익숙한 직원들은 처음에 신문을 어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신문 읽기를 1년쯤 진행하자, 그들도 신문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저는 이른바 CTS세대입니다. 1991년 말 입사했을 때 편집국에서 '꼬마 원고지'와 '대장'이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를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차지했습니다. 이 즈음 뉴미디어 예찬론자들은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신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습니다. 최근 미국의 트리뷴이 파산했습니다. 미국의 일부 중소 신문은 신문발간을 포기하고 온라인 신문만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신문업계가 유사이례 최대 위기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인터넷과 미국 금융위기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20대 중반부터 인터넷과 컴퓨터에 미쳐 지냈습니다. 17년전에 저 역시 신문의 미래에 의문을 품었었습니다. 인터넷의 등장을 보면서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확신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편집국 안팎에서 인터넷을 외치고 다녔고 급기야 직접 인터넷 미디어까지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신문 가치의 재발견'을 말하고 싶습니다. 알퐁스 도테의 소설 '별'에서 양치기가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흔하면 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양이 그렇지요." 인터넷이 이제 흔한 것이 됐습니다. 따라서 귀함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시간'입니다. 티머시 맥이라는 미래학자는 '시간이야말로 미래의 회귀 자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인터넷 공간의 정보과잉과 정보 스모그는 인간의 시간을 무한정 잡아 먹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마구 갉아먹는 인터넷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위클리비즈를 펼치면, 위대한 경영구루와 CEO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귀한 스토리를 구글에서 찾으려면 아마도 3박4일은 걸릴 것입니다. 아니 그런 시간을 투자하고도 쓰레기에 가까운 정보를 얻을 뿐입니다. 50~70%정도 수준의 불량품 백만개를 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문 가치의 재발견에서 핵심은 스토리텔링의 파워입니다. 저널리스트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대신 발로 뛰어서 알아내야 합니다. 또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여 시각과 인사이트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신문을 찾을 것입니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강연료는 평균 15만달러 안팎입니다.  책을 내면 백만권대를 단숨에 돌파합니다. 현역 저널리스트중 최고 부자이며, 스타입니다. 사람들이 프리드먼을 찾는 것은 귀한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프리드먼을 통해 유명인사를 대신 만날 수 있고, 정보와 정보사이에서 인사이트와 시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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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수요일 자전거 출장에 도전하였습니다.

평일에 잠원~가산디지털단지 구간을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수요일 분당 야탑역 근처 인터넷 회사로 출장갈 일이 생겼습니다.

이 회사의 후배가 멋진 서비스를 만들었으니 데모를 보러 오라고 유혹했습니다.

잠원에서 분당가는 것을 그리 큰 부담스러운 그리가 아닌데, 문제는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 회사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2번 갈아타고 거리도 꽤 되기 때문에 1시간 40분은 족히 잡아야 합니다. 자동차로 가자니, 기름값도 많이 들고 한낮에 남부 순환도로를 타는 것이 꺼려졌습니다. 외곽순환도로를 안양쪽으로 돌아서 서부간선도로를 타도 기름값과 거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끝에 자전거 출장을 상상해봤습니다. 잠원에서 분당까지 자전거로 1시간30분 남짓 걸릴 것 같아 조금 일찍 출발하면 여유가 있을 것같았습니다.

문제는 복귀인데,,, 지도를 놓고 복귀 방법을 연구해봐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분당에서 안양천과 연결되면 되는데, 지도를 보니 고속도로와 산이 탄천과 안양천을 갈라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리가 제법 멀어서 자전거로 가산까지 오는데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부딪혀 보자는 생각에 오전 7시50분쯤 집을 나서 일단 한강~탄천을 타고 분당을 향했습니다.

탄천길을 정말 좋았습니다. 가을기분도 한껏 느낄 수 있었고, 길이 평탄해서 편안하게 달렸습니다.

그러나, 분당에 들어서서 야탑역으로 빠지는 출구를 찾으려고 하는데, 안내 표지판을 찾기 어려워 좀 헤맸습니다.

표지판은 처음 방문한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동네 사는 분들 위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됐든 물어 물어 야탑역 근처 후배 회사에서 멋진 데모를 보고 점심까지 잘 먹었습니다.

문제는 복귀인데, 후배에게 혹시 안양까지 가는 버스가 없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했습니다. 30분간격으로 시외버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답에 좀 안심을 하고 점심을 맛있게 먹은 뒤, 야탑역 근처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눈에 안양역-석수역이라는 글자를 단 좌석버스가 확 띄었습니다. 333번이었습니다.

'안양역이라면, 안양천과 바로 연결될 걸...'

그래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좌석버스 승강장을 향했습니다. 자전거 탑승을 거부하는 333번을 하나 놓치고, 두번째 버스에 무사히 올랐습니다.

약간 피곤함으로 조는 사이 버스는 안양시에 진입했습니다. 안양역을 보니 반갑기 짝이 없었습니다. 늘 안양천을 달리기 때문에 안양천 근처로 오니 본토에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 것이지요.

안양역에서 경찰관에게 안양천 출입구를 물어 쉽게 안양천에 진입했습니다.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충훈교, 기아대교, 금천교 등을 지나 철산대교에 이르렀습니다.



회사에 복귀해서 자전거 출장 대차대조표를 따져보니 꽤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원~분당까지 1시간 30분.

분당~가산 디지털단지 2시간(버스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

비용:1800원(좌석 버스값)

이런 대차대조표라면 앞으로 서울시내와 서울 인근 지역 출장은 자전거를 이용해도 되겠습니다.

문제는 바이크&라이드 정책과 안내 표지판입니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기차, 버스에 자전거캐리어를 달아 자전거이용자 편의를 최대한 수용합니다. 이를 bike & ride 정책이라고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바이크&라이드 정책을 도입한 곳이 없습니다. 최근 제주도에서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버스기사에게 잘 보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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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자유란?

올해 초 잠을 설치다가 문득 한강으로 나가 회사로 걷기 시작했었다. 걸으면서 몸이 풀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러나 걷기가 일상화되자, 나는 또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듯했다. 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리속에 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추석연휴전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걷기와 또 다른 감흥을 느꼈다.

같은 시간내 이동 길이가 길어졌다. 걷기를 할 때 보다 머리속의 지리적 공간이 확대된 것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100Km에 이르는 공간이 하루 생활공간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자전거 타기 역시 또 다른 속박에 나를 몰고간다.

새벽에 제 시간에 회사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잠을 설친다.

퇴근 무렵에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허둥대다가 자전거에 올라타곤 한다.

자전거가 개념적 지리공간을 확대시키면서 나에게 이동의 자유를 맛보게했다. 그런데, 또 다른 속박을 안기고 있다.

다시 걸어야 하나. 자전거를 타다가 걸어가는 앞 사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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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광복절을 맞았습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것을 기준으로 하면 63번째 광복절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준으로 삼으면 건국 60년이 됩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기준으로 삼으면 89년째 됩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다단함이 8.15에도 묻어 있습니다.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에 무게를 두는 쪽은 건국 60년의 의미를 이 시기에 되새기고자 합니다.

이에 비해 이승만정부의 친일성, 반쪽 정부수립에 비판적인 쪽은 건국60년이라는 용어 자체에 반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임시정부 계승을 명문화한 대한민국 헌법을 들어 건국 89년이라며 건국 60년의 의미새김에 반론을 펴고 있습니다.

이처럼 건국 자체에 대해 사회 분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결국 조선의 역사가 일제에 의해 단절됐던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나라 주권을 잃고 외세 지배를 받았고, 외세로부터 벗어난 것도 또 다른 외세에 의해서 이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민족의 근 현대사는 이런 저런 상처투성이가 됐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갈라섰고, 일제 청산이라는 무거운 역사적 짐을 지게됐습니다.

만약, 한민족이 일제를 겪지 않았거나,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했다면 현재와 같은 심각한 사회 분열이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세계사적 시각에서 자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핵심 열쇠는 '제국주의'라는 키워드입니다.

인류의 역사시대에서 제국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민족중에서 자기 말과 핏줄을 현대까지 유지하고 있는 민족은 한민족이 유일합니다.

이는 한민족이 세계사 무대에서 그만치 독특한 위치를 유지해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민족은 세계사 무대에서 중간규모의 세력을 유지하면서, 사대와 자주 노선에서 줄타기를 해왔습니다. 또 달리 표현하면 실용과 쇄국노선에서 줄타기를 해왔습니다.

중심세력에 적절히 굴복하고 실리를 챙기는 노선에 따르는 쪽은 실용주의로 분류됐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실용주의는 사대주의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한민족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지키려는 쪽은 자주주의를 표방했습니다. 그러다가 쇄국이나 고립주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8.15광복절을 맞아 한쪽에서는 건국60년 행사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백범 김구선생 묘역을 참배하는 등 각기 다른 행사로 의미를 새기는 현재의 모습은 이처럼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세계사적 위치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자주와 사대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한민족의 오랜 뿌리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벌어진 모습을 너무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자주와 사대사이에서 지도자들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거시적 흐름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내부 싸움에 매몰될 때 민중들만 늘 고통을 당해왔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이 그렇고, 병자호란이 그랬습니다. 조선 후기의 혼란 역시 민중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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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랜만에 글을 올린다.

사는 것이 늘 이렇다. 일상사에 쫓기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하고 뭣 하나 제대로 오랫동안 해내기 어렵다. 블로그에 하루게 2~3개 포스트를 올리는 블로거들의 열정에 늘 놀란다. 사실 하루에 1개 글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각설하고, 한강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늘은 한강대교 북단 용산쪽을 탐험했다. 탐험이라기 보다 발을 살짝 디뎠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반포대교의 잠수교를 건너서 동작~용산까지 고수부지를 따라 걸었다. 평소에는 한강대교 인도교를 선택하는데, 오늘은 한강대교에서 용산으로 올라갔다.

이 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한강대교 인도교 공사때문이다. 최근에 한강대교 인도교 공사가 시작되면서 노들섬에서 한강대교 남단까지 인도교를 막아놓고 있다. 북단에서 보면 왼쪽 인도교다. 따라서, 걸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려면 북단에서 노들섬까지 갔다가 노들섬에서 한강 고수부지쪽으로 다시 내려가서 노들섬 반대편 계단을 타고 인도교 반대편 쪽으로 올라와야 한다.

좀 복잡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 오늘은 용산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 역으로 가려고 시도한 것이다.

발상은 잔머리 굴리기에서 나왔는데, 막상 용산쪽으로 올라가니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축구에서 운동장을 넓게 쓰는 팀이 잘 하는 팀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걸어서 다니다 보니 서울에서 활동 폭을 점점 넓혀가는 느낌이다.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용산을 지나칠 때와 걸어서 용산을 지나칠 때 느낌이 전혀 다르다. 걸어서 용산을 보니 건물 등 거리 모습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소득은 한강대교 북쪽 용산을 재발견한 것이다.

Posted by 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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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포스트를 한지 너무 오래됐다.

블로깅을 주기적으로 지속하기가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블로깅을 멈춘 동안에도 한강 걷기를 계속했다.

최근에는 비가 오는 날이 많았는데, 비오는 날 한강걷기를 어느덧 좋아하게 됐다.

우선, 오가는 사람이 적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날씨 좋은 날, 그리고 휴일 한강 고수부지는 북새통이다.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팅, 마라톤 등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편안하게 걸을 수가 없다.

비오는 날 한강을 걸어가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찰랑거리는 한강 물 소리도 귀에 잘 들린다.

안개가 낀 강 건너 동네 풍경도 제법 그럴 듯하다.

외국 건축가가 한강변에는 못 생긴 아파트만 늘어서 있고, 레스토랑이나 예술 공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강 주변에는 못 생긴 아파트나 빌라만 아슬하게 붙어 있다. 왜 우리는 한강변을 이렇게만 개발했을까.

요즘 한강 르네상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공사를 벌이고 있다.

한강을 제대로 살리는 길은 한강에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접근성이나 오락성만 강조해서는 한강을 명품으로 만들기 어렵다.


Posted by 펜맨
TAG 걷기,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