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는 것이 제 시대의 교육목표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기 위해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21세기 한국 사회의 교육 목표는 무엇일까 라고 자문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학교에서 가르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또 학교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원에서 아이에게 어떤 교육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이런 가치를 아이에게 매일 주입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기는 것이 진리다. 수단을 가르지 않고 1등하는 인간이 되라."

"현재 좋은 것은 너희 세대에도 좋은 것이다. 법조인과 의사가 되기 위해 좋은 성적을 올려라."

"한국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 줄을 잘 못 서면 평생 후회한다."

"입시제도는 믿을 것이 못된다. 현재 입시제도 허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좋은 대학에 무조건 가야 한다."

"엄마, 아빠가 살아보니 역시 영어가 사회적 신분을 갈라놓더라. 너 만은 영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마."

저는 요즘 교육에 관해 무력감을 느낍니다. 아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 '고액 과외' '특목고 열풍' '의대 열풍' '사법고시 바람' '조기 유학' '기러기 가족 문제' 등 사회적 이슈가 나오면 속으로 '나는 휩쓸리지 않겠다. 이런 사회는 문제가 있다. 이런 사회를 안 만들어 내 아이가 대학갈 무렵에는 그런 고통을 안 받도록 하겠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건방진 생각이었지요.

이 시점에서, 저 역시 아이를 선행학습 학원으로, 영어 학원으로 내 몰고 있습니다. '나만 잘 난 체하다가 아이 망치겠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컴퓨터속 사진을 정리하다고, 제 아이가 7세때 미국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사진만 봐도 행복했던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옆집 인도출신 아이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제 아이가 피부색도 다르고, 몸에서 카레 향이 진하게 나는 친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왔을 때, 기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한 동네 친구처럼, 과자를 나눠먹고 수다를 떨고 즐거워 했습니다. 카메라 렌즈에 그 모습을 담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아이들은 편견이 없구나."

당시 아이가 미국 학교에 다니면서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 등 여러 나라 어린이와 어울려 잘 지내는 것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습니다.

심지어 이란, 파키스탄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습니다. 제 아이는 한국의 이야기하고, 일본 아이는 일본을 이야기했습니다. 소통 언

어는 물론 영어였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아이의 교육 목표를 나름대로 잡았습니다. "지구촌에서 당당한 세계 시민으로 서기"였습니다.

당당한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려면, 우선 자기 문화에 대한 아이덴티티 identity가 필요합니다. 역사와 문화를 잘 알아야 합니다.

둘째, 이웃나라나 먼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포용능력을 지녀야 합니다.

셋째, 영어로 내 나라 문화와 역사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가지 조건을 갖춰야 지구촌에서 당당한 세계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6년전에 위와 같이 나름대로 '당당한 세계 시민'을 교육 목표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귀국후 6년 내리 이런 목표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에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2008년을 앞두고 '당당한 세계 시민'교육이라는 목표를 조심스럽게 꺼내볼까 합니다.





Posted by 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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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K 2008.01.18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부터 당당한 세계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