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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쾌락학" 다른 제목인 [즐거운 지식]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 적어보기 (작성중)

관계의습관 2025. 3. 27. 23:27

[책] 프리드리히 니체의 '쾌락학' 번역본 '즐거운 지식'을 읽고... 

 

2. 나의 행복

<추구하는> 일에 지침으로 해서
나는 <발견하는> 것을 이해하여 갔다.
바람이 나의 얼굴을, 거추장스러움을 스치고 갔기 때문에 
나는 어떤 바람과도 동승할 수 있게 되었다. 

3.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서 있는 곳을 깊이 파라! 
아랫쪽에는 샘이 있다. 
몽매한 인간들은 외치게 두라. 
<밑으로 가면 오직---지옥뿐이다!> 라고. 

4. 대화

A: 나는 병이 났을까? 회복될 수 있을까?
     누가 나의 의사인가? 너는 말해 줄 수 있느냐? 
     오! 내 기억은 썩어 버렸다! 

B: 오직 지금만 너는 정말로 건강하다. 
     잊어 버린 자는 건강한 것이다. 

[지금만은 언제를 의미하는 걸까. 무엇을 잊어버려야 건강한거지? 고통이라고 연필로 끄적여 둔 것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

9. 나의 장미

그렇다, 나의 행복, 그것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모두의 행복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리라. 
너희, 나의 장미를 따고 싶으냐? 

바위와 가시 사이에
너희는 웅크리고 앉아, 몸을 감추고
자주 손가락을 찔릴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행복___그것은 조롱을 즐기기 때문에
왜냐하면 나의행복___그것은 음모를 즐기기 때문에
너희는 나의 장미를 따고 싶으냐? 

14. 장부

아교로 붙인 우정보다는 오히려, 
전부를 드러내 놓은 적의가 낫다. 

16. 위로

산꼭대기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지 오르기만 하고, 거기에 너무 많은 생각을 주지 않는 것.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산꼭대기에 단지 오르기만 하고, 거기에 너무 많은 생각을 주지 않고 싶은데.. 그게 어렵다. 

23. 해석

해석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을 끌어들이는 것이기에 
나는 스스로 자기의 해석자는 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오르는 자가 있다면
나의 모습도 밝은 빛 속으로 높여 주리다. 


첫 줄에 마음이 이끌림. 그 한 줄을 읽고 든 생각. 

나는...,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어떤 글을 읽을 때
듣거나 본 내용을 머리 또는 마음으로 정리 한 후 나름의 해석을 붙이는 노력을 덧붙인다. 또는 덧붙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행위 없이 그것이 나를/우리를 지나쳐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되었다면,
나의 의지를 털끝만큼도 붙들지 못한 말이나 글 또는 사람이라면 
귀에 걸리지조차 않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고개를 돌려 짧은 시간의 시선조차 두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면 
나는 그 대상과의 거리를, 관계를 변화시킬 가치나 이유 등을 그 무엇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거부나 혐오의 대상이 되어 짜증이나 구토감을 일으키는 것 보다 더한
무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게 한 그것 자체의 문제일지 모르겠다. 

저 첫줄처럼 '해석'이란 걸 하고 싶어지는 대상을 마주하게 될 때 나는 나 자신을 끌어들여왔음을 새삼 인식할 수 있었다. 

나를 끌어들이게 하는 것, 해석하고 싶어지는 것. 나의 에너지가 흘러 들어가게 되는 대상. 

25. 소망

나는 타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
그러나 내가 누군자, 나는 그것을 말할 수 없다. 
내 눈은 나 자신에게는 꽉 닫혀 있다. 
나는 내가 보았던 것, 그리고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때때로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자리잡고 있다면 
꽤 이익일 수도 있으련만; 다만 그래도, 
적 만큼은 멀지 않은 곳에! 
가장 가까운 친구, 역시 너무 멀다. 
그와 나 사이에 중간의 곳 ! 
나의 소망, 너는 나의 수수께끼를 알아맞힐 수 있겠느냐?